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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량

    2014년 개봉한 명량은 김한민이 감독한 액션 장르의 사극 영화입니다. 러닝타임 128분이고 최민식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명량의 역사적 배경, 줄거리, 관람후기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

    명량대첩의 배경이 된 임진왜란은 서기 1592년 4월 13일인 조선의 왕 선조가 즉위하고 25년에 조선시대에 일어난 전쟁입니다. 임진왜란은 조선시대의 전기와 후기를 나눌 정도로 아주 오랜 기간 진행된 전쟁이었습니다. 전쟁 중 선조가 수도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임진왜란은 정유년에 일어난 정유재란까지 합쳐 무려 7년간 지속된 전쟁입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이름은 임진년에 일어난 왜국(일본)이 일으킨 난리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 당시 명나라의 세력이 약해졌었고 일본을 통일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나라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으며 먼저 조선을 공격하고 명나라를 침공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조선에서 먼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그전에 일본은 조선에게 명나라에 대한 야욕을 보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조선은 내부의 정치적인 다툼이 있었고 20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런 일본의 야욕은 관심도 없었고 그리하여 이러한 무관심 속에 아무런 대비도 못한 채 조선은 일본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임진왜란은 크게 한산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으로 나누는데 이 전쟁 중에 이순신장군이 이끈 전투는 바다에서 이루어진 해전으로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해전으로 나뉩니다. 그 중 명량대첩은 이순신이 이끌었던 해전 중 두 번째 해전으로 1597년 9월 16일에 발발하게 됐습니다. 명량대첩이 있기 전 크고 작은 전투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이 크게 패하여 12~13대의 선투선만 남게 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 12척의 배로 333척의 일본 전선을 격파하며 명량해전에서 크게 승리합니다. 일본의 해전 방식은 주로 가까이 붙어 싸우는 근접 전을 택하는 반면 조선의 해전 방식은 멀리서 포를 쏘는 포격전을 택하고 있어서 일본군이 오기 전 원거리 공격으로 일본의 전선을 파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마침 바닷물의 물살이 바뀌며 조선군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에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명량대첩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이순신 장군의 명석함을 볼 수 있는 해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대력적인 줄거리

    조선 조정 대신들의 음모로 장군에서 물러난 이순신은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에게 대패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조선의 왕 선조는 방법이 없자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을 수군을 총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합니다. 그러나 칠천량 전투로 전선은 12척만 남아있는 상황이었고 칠천량에서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둔 일본은 기세를 몰아 조선으로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순신측 수군내부에선 엇갈린 의견으로 혼란이 일어나며 장수들이 탈영을 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다미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잔인한 해적왕 구루지마를 전쟁의 선봉장으로 보냅니다. 이것을 미리 예측한 이순신은 육군에게 군사와 무기를 요청하지만 그곳도 상황이 좋지 않았고 이순신의 아들까지 전쟁을 하지 말라고 막아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전쟁을 치를 준비를 이어가는데 이때 구루지마가 조선인의 머리를 잘라 이순신에게 보내며 경고를 합니다. 이에 두려움에 휩싸인 병사들은 탈영을 하며 혼란이 가속화되는데 이순신은 그런 병사들을 모아 바로 참수를 합니다. 그것은 본 장수 '배설'은 자객을 보내 이순신을 없애려 하고 거북선마저 불에 태워 버립니다. 이 소식은 구루지마에게 전해지고 구루지마는 기세등등하게 바로 출정 준비를 합니다. 이런 상황에 이순신 휘하의 장수들은 무모한 전투라며 포기하자는 의견을 보냅니다. 이 말을 들은 이순신은 진영에 있는 모든 물건을 불태워 버리며 병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고취합니다. 그리곤 남아있는 전선 12척의 배를 이끌고 전장을 나가는데 이순신이 탄 전선빼고 나머지 전선들은 뒤로 물러나 전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실상 이순신의 전선만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 되었고 그리하여 이순신은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를 벌입니다.

     

    관람 후기

    한국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이순신이란 인물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위인 중의 위인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위대함은 알고 있지만 그에 관한 상세한 일화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화 명량으로 인해 이순신에 대한 위대함이 한 번 더 울려 퍼진 것 같아 감회가 새롭고 또 한 번 한국인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냥 막연히 여러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이라 기억하는데 영화를 통해 이 인물의 고뇌와 상처를 알아가고 다시 한 번 역사와 현재를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시 찾아본 역사에는 어떻게 우리가 일본군을 격퇴하고 승리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근거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 당시 조선은 일본보다 전선을 만드는 데 있어 더 높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전선에 화포를 설치하는 규모 또한 컸으며 굽이치는 조선의 해협에 견딜 수 있는 배의 구조까지 현대의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할 요점들로 가득했습니다. 감독은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제작한 듯합니다. 전에는 이순신 하면 '거북선'을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영화에 나오는 '판옥선'도 기억할 것 같습니다. 영화는 전투를 하기 전 이순신이 처한 상황과 그의 고뇌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전투장면은 마지막으로 몰아넣는 전개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것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과 상처들을 더 집중해서 보이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적인 전개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은 현대에선 깨부술 수 없는 무적의 영웅으로 비추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 외로움과 고뇌를 보여주며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를 더 위대하게 만들어주고 관객들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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